8/16/2019

[조합40주년] 1980년대 의료시장 확대…제조기업 급속한 증가

정부, 의료기기산업 관심 증가…규제 강화·국가지원사업 추진 등


의료기기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판매업소의 증가도 두드러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판매업소는 1975년에 1,000개소를 돌파한 후 1980년에는 2,100여 개소로 늘어났다.

이들 판매업소는 통계상 위생용품 판매업소가 포함된 것으로 순수한 의료기기 판매업소는 이보다 훨씬 적은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크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판매업소의 증가는 의료기기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국내 의료시장의 급속한 확대와 수입 및 생산의 증가를 기반으로 의료기기 판매부문 역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1950년~60년대에 이어 여전히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1970년대 판매업소 역할은 단지 유통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수입업체와 제조업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리점 등 판매소도 많이 있었지만 판매업소를 운영하면서 직접 수입을 하거나 때로는 제조기업을 설립하는 경우도 많았다.

동서의료기의 박양순 대표도 1968년 서일치과상사를 운영하다가 1976년 동서의료기산업사를 설립하여 치과기자재 생산을 시작했으며 1977년에 종로에서 두산의료기를 운영하기 시작한 김춘중 사장도 1980년대 중반에 철제로 만드는 의료용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로얄메디칼 이규일 회장 역시 전문 수입업체로 출발했다가 80년대 후반부터 마취기 및 관련 부품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성장하는 등 판매업은 유통과 함께 수입과 생산업체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판매업소는 60년대까지 주로 서울에 집중되었으나 그 수가 많아지면서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되었다.

서울에는 여전히 종로를 중심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병의원의 분포에 따라 판매업소들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판매업소는 점차 취급 품목이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생산과 수입업체가 운영하거나 전문 유통업체가 생산과 수입을 겸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으며, 각 지역의 병의원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의료수준의 향상과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이들 판매업소는 그 수가 늘면서 1970년대 서울을 시작으로 각 지역별로 협회나 소규모 모임을 통해 상호 부조와 업계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정보 등을 나누는 등 각 지역별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의료기기산업 발전과 제도 변화

의료기기 판매업소가 늘어나면서 의료기기 유통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법제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의료기기 산업이 시작된 1954년부터 1970년대까지도 의료기기 산업은 존재가 미미했고 정부에서도 관심 밖이었다.

당시에는 의료기기 관련법도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고 약사법의 일부 조항에 의료기기가 포함되는 정도였다.

초기의 의료기기산업을 관리하는 제도는 약사법에 규정된 기본 시설의 설치와 필요한 경우 해당 기관의 시험검사표를 첨부해야 한다는 등 기본적인 사항에 머물러 있었다.

별도의 관리부서나 관리제도, 관리체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80년대 들어서 의료기기산업이 커지면서 의료산업과 국민건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게 되자 의료기기 산업을 관리하는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발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보급, 활용되고 있는 의료용 엑스선 장치의 문제점을 지적한 신문기사로부터 시작했다.

의료용 엑스선 장치의 방사선 안전성 문제는 그 동안 간간이 문제가 돼 왔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식수준이 높아지면서 1976년 5월 10일에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이 무허가 X-ray양산, 인체에 유해한 방사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국민건강의 문제를 보도하고, 5월 27일에는 동아일보에서도 이 문제점을 기사화하자 X-ray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됐던 것.

대한방사선의학회와 대한방사선사협회 관계자들이 모여 100mA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는 15개 엑스선장치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7월28일부터 8월 19일까지 3차에 걸쳐 제조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9월 15일 보건사회부에 엑스선장치의 규격화 및 제조허가 기준의 강화, 국산 제품의 정밀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300mA 이상의 외국 제품 수입금지 해제를 건의했다.

보건사회부는 이에 대해 1978년 10월 18일부터 의료용 엑스선장치 등의 국가검정업무를 시작했으나 정확한 기준이 없어 제조회사의 '자가 기준' 또는 한국공업규격(KS 규격)에 의존해야했다.

또한 전수조사가 아닌 보건사회부의 검사지시에 의한 장치만을 대상으로 검사업무를 수행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문제는 1979년 9월과 10월 사이에 주요 일간지들이 불량 엑스선장치의 제조와 판매를 문제 삼으면서 엑스선장치의 관리가 다시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보건사회부는 1979년 10월 18일 국립보건원과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를 약사법 제66조에 의거해 의료용구검사기관으로 지정하고, 사전검사 대상으로 의료용 엑스선장치를 포함한 22개 품목 40종을 선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는 표준실 이화학기기과를 통해 1980년 1월1일부로 의료용구 검사대상 품목에 대한 사전검사업무를 개시하고, 1월 17일에는 전기부 의료기기실을 신설하여 6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보건사회부는 그해 7월 1일, 이 기관을 보사부고시 제18호에 의해 의료기기 제조시설 조사기관으로 선정하고 기준 및 시험 방법검토 확인업무를 승인했다.

1979년 10월 18일, 보건사회부장관은 약사법의 조항을 근거로 하여 처음으로 국립보건원과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에 내린 의료용구 검사명령을 내렸다.

또 보건사회부는 엑스선장치에 대한 국가기준을 정하기 위해 국립보건원 방사선 표준부 기기과에 지시해 1980년 4월 14일 의료용 엑스선장치에 관한 '시험기준 및 시험방법'을 마련했다.


의료기기산업 최초의 국가 지원사업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관련 제도도 개편됐지만 정부의 관심도 증가했다.

정부는 전자공업진흥 8년 계획을 세우고전자공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4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총 95개 품목을 개발하도록 지원했다.

이때 의료기기는 청력계, 혈압계, 전자식환자검진기, 거짓말탐지기, 전자원격심전계, 혈구계산기 등 의료기기 6개품목이 포함됐다.

정부에서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국내 의료기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81년 '고가 특수장비 도입 허가 심사규정'을 마련해 고가 수입 의료기기를 일부 통제하기 시작했다.

고가 특수 의료장비를 적정한 시설과 인력을 갖춘 의료기기관에서만 도입해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해 효율성을 높이고 외화를 절약했던 것.

이는 의료수가 상승요인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입허가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불필요한 수입 의료기기가 무분별하게 도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80년대 의료기기 국산화 전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한층 확대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졌고, 의료보험제도의 확대 적용 등으로 의료제도가 개선되면서 병의원의 수, 의사들의 수가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의료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미 80년대 이전부터 다국적 의료기기업체들이 첨단 의료기기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체들 역시 제조 기술을 통한 생산력 향상과 가격경쟁을 경쟁력으로 외산 기업들과 경쟁을 시작했던 때였다.